저는 잘못하지 않았지만 카카오는 잘못했습니다

2022. 10. 24. 12:17인스턴트 지식 KNWLG

반응형

카카오의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고가 일어나고 대략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대부분 서비스가 복구되었다. '카카오톡' 채팅 서비스에 요것저것 아기자기하게 사업하는 회사인 줄 알았던 그들이 멈추자 대한민국 일상의 일부분이 멈추거나 불편을 겪었다. 핵심서비스인 카카오톡 메세지는 대체 서비스가 충분하지만 시장지배력으로 구축해놓은 시스템은 생각보다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워낙 예상할 수 없었던 천재지변, 화재

 

2019년 3월 에스콰이어 잡지 모델이 된 라이언씨. "왜? 뭐?" 사진출처 디스패치 홈페이지

 

카카오 데이터 센터 화재 발생 후 바로 복구하지 못하던 카카오는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는데,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카카오 부사장이 이렇게 언급하였다. 

 

"화재라는 것은 워낙 예상할 수 없는 그런 사고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까지는 조금 대비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이 워딩은 당연하게도 언론에 좋은 먹이감이 되어 수많은 뉴스의 타이틀의 소스가 되었고, 카카오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는 누리꾼들도 그들의 기본적인 상식에 반하는 카카오 부사장의 언급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비판적 여론을 만들어갔다. 데이터 센터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재난인 화재를 "워낙 예상할 수 없는 사고"로 규정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메세지의 대상이 기자, 언론이 아니었다.

부사장의 언급을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얼토당토않은 워딩이 나온 이유를 추측해보면 '법리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 

 

k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클릭하면 영상으로.

이번 카카오 셧다운 직전인 22년 8월 관련법에 의거, 금융감독원에 "재해복구 관리지침"을 제출하였다. 그 자료에 있는 내용 중 재해의 정의를 아래와 같이 하였다. 

 

재해 : 지진, 낙뢰 등의 천재나 화재 등 정보기술 외부로부터 통제가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하여 정보시스템이 작동 불능상태 또는 서비스 중단으로 일부 또는 전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

 

재해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면 지진,낙뢰 등의 천재지변과 "화재"를 같은 상황으로 범위를 정의하였다. 이는 서비스 사업자의 입장에서 "불가항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일치하지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천재지변에 의한 서비스 중단과, 인위적인 인간의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화재를 동일시했다는 것에서 문제점이 출발한다.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메세지의 대상은 대중이 아니었다.

 

이 관리지침을 보면 카카오 부사장이 왜 화재를 "예상할 수 없는 사고"였다고 했는지 대략적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그분(그는 아니고 그녀라는 단어도 좀 어색하다)은 기자들과 수많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법리적 해석과 범위"를 이야기했다.  즉 카메라 앞에서 국민을 상대로 금융감독원이나 행정부, 주주등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메세지를 전달한 것이다.

 

카카오 먹통 사태 기자회견. 이미지 출처 테크M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우를 PR, 혹은 IR의 메세지 실패라고 한다. 이런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PR팀과 메세지와 단어, 워딩 하나하나 직접 합의하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과정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게 되었다. 

기자들과 수많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법리적 해석과 범위"를 이야기했다.  즉 카메라 앞에서 국민을 상대로 금융감독원이나 행정부, 주주등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메세지를 전달한 것이다.

 

언론, 여론과 정부,주주,투자자,임직원등의 이해관계자들 간의 메세지는 달라야 하고 이러한 큰 이슈에서는 더 세밀하게 다루어져야 하지만 그 한마디에 카카오 부대표는 여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카카오 또한 사태를 수습하는데 실패했다. 

 

(이건 논외이지만 그리고 이 정의와 범위에도 문제가 있다. "정보기술 외부로부터 통제가 불가능한 사건"이라 명시하였는데, 해킹과 사이버 공격등에 의해 서비스 불능 상황에 대한 범위가 어디에도 정의되어 있지 않다. 카카오는 이를 재해나 장애 어디에도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이 관리 지침을 받은 금융감독원의 피드백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해킹과 사이버 공격에 의해 서비스가 불능상황에 빠지면 오히려 정부는 통제하거나 강제할 법적인 방법은 없다. 법적으로는.)

 

 

카카오 대표의 또 다른 메세지 "카카오는 실패했다"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홍은택 카카오 대표 kbs 뉴스 갈무리. 클릭하면 뉴스로

 

남궁훈 대표 : 2021년까지 카카오게임즈 각자대표. 올해 합류 후 2022년 3월부터 대표직 수행
홍은택 대표 : 2021년까지 카카오커머스 대표이사. 올해 2022년 7월부터 대표직 수행

 

짧은 임기 기간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치명적인 실패"라는 워딩은 내부적인 합의 없이, 혹은 대표의 강한 의지 없이는 할 수 없는 말인데 이 말을 언급했다는 것은 내부 시스템에 대한 강한 반성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카카오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조수용,여수민 각자 전임대표. 임기에서 물러난 후 언론을 제외한 카카오내부, 주주들에게 소환된다.

 

현 카카오 대표의 자기 반성은,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 앞에서 국민과 여론을 향함을 동시에 전임 대표들과 주주들을 향한 "계산된, 하지만 감정적인"메시지이기도 하다. "야! 이거 전에 아키텍처 구축할 때 제대로 했어야 할 꺼 아니야!"

 

바로 조수용,여민수 전임 각자대표에게 사실상 책임을 묻는 메세지라고 할 수 있다. 대표직 수행한 지 7개월밖에 안된 신임 대표들에게 서비스 아키텍처 구조의 문제점을 묻기에는 임기가 너무 짧다. 그리고 만약 내부적으로 계속 문제가 되었다면 새로운 대표가 선임되자마자 실무자들이 내부적으로 개선의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조차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혹은 '귀찮아서'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키텍처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장회사는 위기 상황에서 카메라 활용해야 한다. 

실무자가 아니라서 지금의 트랜드는 잘 모르지만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위기상황에서 PR/IR팀장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현상황의 컨셉을 만들고, 메세지를 하나하나 작성하는 '카피라이터' 역할을 수행하며 위기상황의 exit 플렌을 진두지휘했었다. 지금은 부서의 역할도, 범위도 달라졌겠지만 카카오는 이번 이슈로 데이터 센터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반응형